원래도 마른 체형은 아니었지만 40대에 접어들자 체중이 급격하게 불어나기 시작했다. 단순히 체중이 늘어나는 것뿐만 아니라 건강검진 상 지표들도 뚜렷하게 악화되었다. 명확하고 구체적으로 건강이 무너지고 있다는 신호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루 종일 앉아서 일하는 생활은 변하지 않았다. 문제를 의식하고 있었지만 행동으로 연결하지는 못했던 것이다.
행동에는 많은 준비가 필요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운동을 해야겠다고 결심은 하지만 행동으로 옮기기 위해서는 귀찮은 일들이 너무 많았다. 특정한 장소에 이동해야 하거나, 장비를 갖춰야 한다고 느껴졌다. 시간을 확보하기 위해 업무 일정을 조정해야 할 것 같았다. 운동은 번거롭고 귀찮은 준비를 끝내야 할 수 있는 일처럼 느껴졌다. 운동보다 운동을 위한 준비를 다시 준비해야 했다. 될 리가 없다.
그러던 어느 날 조금 일찍 잠에서 깬 새벽. 홀린 듯 집을 나서 산책로를 뛰었다. 뭔가 논리적인 생각의 결과물이라기보다는 본능적인 움직임에 가까웠다. 산책로로 이동하는 시간은 고요했고 평화로웠다. 공기는 맑았고 약간 습한 듯했다. 여명이 밝기 직전 시간만이 가질 수 있는 푸르지만 신비한 빛을 내는 하늘과 아직 어둠이 가시지 않은 뒷산의 풍경은 그동안 몇 년 동안 봐오던 모습과는 사뭇 다른 느낌이었다. 뭐라고 구체적으로 표현하기 힘들지만 확실한 건 기분 좋은 느낌이었다는 것이다.
그렇게 홀린 듯 산책과 가벼운 조깅을 마치고 집으로 돌아왔을 때 세상은 이미 잠에서 깨어나 있었다. 어두웠던 숲길은 햇살을 받아 반짝거렸다. 이슬을 머금은 풀들이 고개를 끄덕이며 분주하게 몸단장을 하는 듯했다. 새들은 내 눈에는 보이지 않는 바닥의 무언가를 먹으려 분주히 머리를 끄덕였다. 뒷산의 터줏대감 삼색 고양이는 내가 곁으로 지나가도 아랑곳하지 않고 늘어지듯 기지개를 켰다. 출근길의 차들이 분주히 길을 내달렸고 부지런한 몇몇 아이들은 벌써 학교로 향하고 있었다.
새벽 산책과 조깅의 마무리에 내가 본 것은 그동안 내가 살았던 곳의 풍경이지만 내가 느껴오던 것들은 아니었다. 새로운 것을 느꼈고 새로운 에너지를 얻었다. 다음 날도 또 느끼고 싶을 정도로 매력적이고 강렬한 느낌이었다. 물론 새벽에 일어나지 않았던 것은 아니다. 지방 출장 일정이 있을 경우 훨씬 더 이른 시간에 일어나 채비를 했던 경우도 많았다.
그러나 어떠한 압박감도 없이, 시간의 제한도 없이 그저 몸 가는 대로 마음 가는 대로 아침을 맞이해 본 것은 거의 처음이었던 것 같다. 이때 이후로 새벽 조깅은 가장 중요한 내 하루 루틴 중 하나로 자리 잡았다. 새벽은 누구에게나 비교적 여유로운 시간이고, 조깅은 별도의 도구나 준비도 필요 없었다. 그저 집 근처 산책로나 공원을 가벼운 마음으로 달리기만 하면 됐다. 아주 간단한 일이었다.
그러나 며칠이 지나자 이 루틴을 지속하는 것이 '생각보다 훨씬 어려운 일'임을 깨닫게 되었다. 예상보다 큰 실행력과 의지력이 필요한 루틴이었다. 아침 일찍 일어나는 것은 단지 당일 아침만의 문제는 아니었다. 전날 늦게 자더라도 새벽 5시에 일어나는 것은 지속 가능한 루틴이 아니다. 새벽에 일어나는 것이 일상이 되려면 전날 취침시간을 앞당겨야 한다.
여기서 끝이 아니다. 취침을 일찍 하기 위해서는 저녁 일정을 전체적으로 조정해야 한다. 저녁을 먹는 시간, 일정을 마무리하고 잠자리에 드는 시간 등 많은 일들이 영향을 받아야 했다. 새벽에 일찍 일어나는 것이 일상이 된다는 것은 하루를 보내는 전체적인 루틴이 조정되어야 가능하다는 것을 깨닫게 된 것이다. 의지의 문제가 아니라 생활습관의 변화가 핵심임을 알게 되었다.
루틴을 체계화하고 작은 단위로 잘라 관리하며 일상은 작은 순간에 배치하려고 시도했던 출발점이 된 것이 새벽기상이었다는 뜻이다. 내 루틴관리, 습관관리, 성장 관리의 출발점이자 목적지가 바로 새벽기상과 조깅인 것이다.
이렇게 준비를 잘해도 루틴을 방해하는 장애요소는 많았다. 그중 가장 큰 영향을 미치는 것은 날씨였다. 비가 오거나 바람이 차가운 날은 핑계가 생기기 쉬웠다. '내가 뭐 올림픽에 나가는 것도 아닌데 비 맞아 가면서까지 뛰어야 하나?'라는 생각이 들었고, 비 오는 날의 침대는 유독 더 따뜻했고 포근했다.
그러나 '고민할 시간에 그냥 밖에 나갔다만 오자!'는 생각으로 털고 일어났다. 덕분에 비가 오는 날도 루틴을 유지하기 위해 저렴하지만 기능성이 있는 운동복과 운동용품을 하나씩 준비하기 시작했다. 비 오는 날엔 방수 바람막이, 추운 날엔 귀마개와 장갑, 의외로 이런 장비를 검색하고 구매하고 챙기는 일이 내게는 일종의 보상처럼 작용했다. 값싸고 기능이 좋은 바람막이를 구매한 다음날은 내심 비가 와서 성능을 테스트하고 싶다는 생각까지 들었다.
이렇게 3개월쯤 루틴을 지속하자 이제 새벽에 일어나 옷을 챙겨 입고 산책로를 향하는 일은 '의지와 노력'이 필요한 일이 아니라 내 하루를 구성하는 생활습관이 되어갔다. 의지로 억지로 밀어붙이는 대신 내가 잘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들고 그 안에서 물 흐르듯 움직이게 된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새벽 조깅이 마냥 쉽지만은 않다. 가끔은 이불 밖으로 나가는 것이 큰 결심처럼 느껴질 때도 많다. 아파트 밖으로 나오자마자 온몸에 부딪히는 한기를 느낄 때면 '돌아 들어가고 싶은'생각에 강렬하게 사로잡힐 때도 있다. 하지만 그럴수록 나 자신을 조금 더 북돋우며 산책로로 발걸음을 옮긴다. '결국 난 해낼 거고 그 결과 나 스스로가 자랑스러워질 거야'라고 다짐하면서.
갓생은 거창한 결심이 아니라 이렇게 작고 소소한 루틴을 하나씩 내 삶에 스며들게 하는 것이다. 오늘도 새벽 공기를 마시며 나 자신과 나의 갓생을 응원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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